⑧ / 산내암자와 수행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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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암자와 수행


우리나라 불교는 어언 17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정말 엄청난 역사의 나이테가 쌓여 있는 불교다. 하지만, 조선조 5백년의 공백은 한국불교를 멍들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불교의 명맥은 이어져 왔다. 특히 조선조 시대에는 산중불교가 실 날 같은 명줄을 지키고 유지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이라면 본.말사 제도이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 제도적으로 확립된 제도이지만, 현재 제도적으로 고착되어 있다. 전국 25개 본사에는 대개 몇 개의 산내 암자가 있다. 본사에 준하는 말사를 수말사라고 하는데, 표충사는 본사급 수말사에 속한다. 전각도 많고, 경내도 제법 넓다. 사명대사의 향사를 모시기 위한 전각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규모가 크다. 이런 이유를 떠나서도 표충사는 큰 산을 끼고 있다. 옛날에는 재약산 내에 10개가 넘는 암자가 있을 정도로 표충사는 많은 암자를 거느린 본사급 수말사이다. 이제 주지소임을 맡은지 3개월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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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약산 사자평 고사리 분교 터에서 재약산 정상 아래에 있는 진불암으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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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하신 방장 큰 스님을 모시고 진불암을 다녀왔다. 옛날에는 암자에 기거하는 스님들은 절에 들어온 지가 20년 이상이 되어야 암자에서 살게 했다. 대중생활을 충분히 한 다음에 혼자 살아도 흔들림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자격을 부여했다. 20년은 넘어야 암자에서 독살이를 해도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지키고 적정(寂定)한 한처(閑處)에서 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집중 수행을 위해서 대개 암자를 택해서 살았다.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 암자생활을 했다는 것은 전연 아니라는 사실이다. 표충사 진불암만 해도, 과거에 여러 스님이 도를 통하고 견성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근대에도 도인이 출현해서 제방에 소문난 분이 있었다. 지금은 길도 어느 정도 닦여 있어서 다니기도 그렇게 험한 길이 아니지만, 불과 30년 전만해도 큰 절에서 암자까지는 걸어서 3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양식과 필요한 물품을 직접 지게에 지고 올라와야 했다. 


우리나라 전체 암자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표충사 진불암은 해발 1천m높이에 있고, 그야말로 암자다운 맛이 나는 그런 수행처이다. 방장 큰 스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런 암자에서 수행한다면 금방 꼭지(견성)가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암자에서의 수행에 긍정적이셨다. 방장 큰 스님은 큰 절에서 수행하시다가 암자에서 오랫동안 사셨기에 암자에서의 수행생활을 가치 있게 보고 계신 말씀이었다. 사실, 내가 입산수도했던 통도사 극락암만 해도 40년 전에는 암자의 맛이 절로 나는 그런 분위기였다. 지금은 다소 그런 맛이 사라졌지만, 은사 경봉 대선사와 함께 대중생활을 하면서 수행할 적에는 그야말로 암자 맛이 나고 중생활의 참다운 멋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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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불암 마당 평상에 앉아서 표충사를 내려 다 보면서 차 한 잔 마시는 방장 큰스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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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불암을 오르면서 자꾸 옛날 생각이 떠오르고 나의 젊은 시절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만약 30대 정도라면 다 방하착하고 이런 한적한 암자에 와서 화두를 들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손수 밥도 하고 나무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그야말로 속물적(俗物的)인 잡사는 다 멀리하고 오직 구도일념(求道一念)으로 정진에만 몰두하겠다는 의지를 다져 보기도 하지만, 생각으로 끝나고 말 잠시의 망상일 뿐이다. 하기야 가끔 이렇게 암자에 와서 잠시나마 망중한의 시간을 갖는 것도 참구(參究)요 수행이다. 


우리 불교에서 고참 납자들이 이렇게 암자에서 한철씩 나고 했던 것은 편하고 나태해진 자신의 수행생활을 점검하고 자신을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해서 경책한다는 뜻에서 이렇게 암자수행을 선호했다고 생각한다. 근래에는 무슨 다른 뜻을 갖고 암자생활을 하는 스님들도 가끔은 있는 둣 한데, 암자에서는 철저하게 수행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름만 암자에 걸어 놓고 저자에서 활보한다면, 이런 분들은 정말 진정한 수행자일까 하고 다시 한번 재고해 보야 할 것 같다. 암자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수행이 잘 되고 화두 참구가 더 집중된다고 할 수만은 없는 것이 사실은 마음의 자세가 어떠하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큰절에서 살면서도 자신이 하기에 달려 있다고 보는데, 큰 절에서도 조석예불에 참예하고 밥 찾아 먹는 것만 제대로 해도, 큰 수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중생활을 한다는 것이 우리 불가에서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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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불암 옆 천길 바위 위에서 암주스님과 포즈를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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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약산에 온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내가 이렇게 산과 절에 몰입하기는 처음이다. 내가 입산했던 절보다도 이처럼 짧은 시간에 애착이 가고, 뭔가 해 보겠다는 의욕을 가져 보는 것은 재약산 표충사에 와서인데, 나 자신도 모를 정도로 집착하는 편이다. 게다가 암자를 순례하고서는 더더욱 재약산과 표충사에 올인하고 있다. 아마도 전생에 내가 이곳에 살았던 대중으로, 뭔가 이루지 못했던 한이 맺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와봤을 때, 표충사가 낯설지가 않았다. 내가 살던 고향집에 온 것처럼 안온한 감정이 솟구쳤다. 우리가 중국의 유명사찰에 갔을 때도 가끔은 그런 감정을 느꼈는데, 어쩌면 전생에 중국유학을 갔었음에 틀림없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만에 유학 갔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불교에는 《자타카 》란 경이 있는데, 5백 개가 넘는 본생담(本生譚)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처님도 5백 생을 바꿔가면서 다양한 생명으로 태어난 적이 있다는 것을 설화형식으로 말씀하시고 있다. 


한국불교의 특징은 여러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겠으나, 한국불교는 산중불교의 성격이 강한불교이다. 한 때 산업화와 더불어서 산중불교에서 도시로 불교의 대중화를 외치면서 불교가 도시로 나가야 된다고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었다. 물론 도시포교도 중요하지만,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하고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변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오히려 산중불교는 더 좋은 조건과 위치에서 불교의 대중화 현대화를 기할 수 있고, 사람들을 산중 절로 불러 모아서 포교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약산인=도원 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