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서래각 소식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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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각 소식



 



표충사의 겨울은 다소 쓸쓸하다. 음력설이 다가오자 절을 찾는 방문객들도 조금은 뜸한 편이다. 정초에는 방문객들이 많지만, 섣달 하반기에는 다소 한적하다는 지방민들의 전언이다.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양력설을 지낸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음력설을 진짜 설로 치기 때문이다. 출가 수도자가 방문객에 마음을 쓰고 안 쓰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로되, 그래도 절의 주인 된 입장에서는 약초 차라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사진1: 표충사 대광전도 결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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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종단의 많은 사찰들은 삼동결제 중이다. 다들 조용히 방에 들어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좌복 위에서 화두공안과 씨름하고 있다. 사명대사는 달마대사에 대한 시 두 수를 지었는데,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달마가 금릉에 도착해서>

   達麼到金陵



 



가난한 집 무딘 도끼 어렵사리 얻어서 

시월의 언 강물 갈댓잎 타고 서쪽 건너 갔다나요.

아뿔싸 곤륜의 저자에서 제값도 받지 못한 채

시월의 언 강물 갈댓잎 타고 서쪽 건너 갔다나요.



 



달마의 후품

達麼後品



 



옥호가 빛을 거두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어찌나 읊었는지 송운의 눈썹도 다 희었소

다비 뒤의 이야기를 어떻게 말로 다하리오

어찌나 읊었는지 송운의 눈썹도 다 희었소



 




사진2: 달마일위도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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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달마가 갈댓잎을 타고 중국에 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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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가 갈댓잎을 타고 중국에 온 것을 상징한 그림이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디 다르마(Bodhi Dharma)는 동아시아 불교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반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중국에 엄청난 유산을 남기신 선종의 초조이다. 남 인도의 바라문 계급 출신 반야다라에게 배워 대승선을 부르짖고 포교의 뜻을 품어 중국 남조의 양(梁)에 도래하였다고 하는데(520년경), 당대 임금인 양무제와는 소통하지 못했다. 달마대사는 양무제와 문답 후 북위의 낙양에 가서 숭악(산) 소실산 북록의 소림사에 들어가 9년간 면벽 수행했다고 하여, 벽관(壁觀) 바라문이라고 부른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지 5백년이 되었지만, 불교의 정수를 꿰뚫은 도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양무제는 절을 많이 짓고 공덕을 많이 쌓으면 불교의 도를 이룬 것으로 착각했던 것은데 이런 선행과 깨달음은 별개의 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공덕과 선행은 업장을 녹이고 음덕을 쌓는 이타행지만, 수행하여 견성(見性)하는 것과는 또 다른 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일 년에 두 번씩 결제기간을 두어 용맹정진을 한다. 부단한 정진 끝에 뭔가 깨달음이 오기 때문이다. 오늘도 서래각에서 묵선(墨禪)을 하는 나 스스로를 바라본다.



 



재약산인: 도원 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