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 음력설과 절 문화

2020.11.27 표충사
0 219


음력설과 절 문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은 설날과 추석이다. 양력설을 지내기는 해도 이 음력설만큼 민족의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 것 같다. 일제 강점기에 어쩔 수 없이 신정이라 하여 양력으로 1월 1일 날 신정을 지냈지만, 음력설은 구정이라 하여 그대로 지내온 것이 우리 민족의 관습이다. 절에서도 이를 반영하듯이 신정보다는 구정인 음력설을 더 선호한다. 민간에서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의 15일 동안을 정초라 하여 이 기간에 여러 풍습이 행해지고 있다. 절 또한 초하루부터 보름기간에 신도님들은 불공을 드리곤 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이런 불공시식은 그치지 않았는데, 근래에는 다소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표충사도 초하루 날에는 제사가 많아서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사진1: 음력설 공휴일을 맞이해서 표충사를 찾는 신도님들과 일반 방문객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날씨가 쌀쌀해서 절에서 난로를 피우고 있다. 또한 방문객들에게 약초 차를 대접, 호평을 받고 있다.

 





19dowon01.jpg


19dowon01.jpg (106.97 KiB) 5 번째 조회




불교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물론 처음엔 출가 수행자들을 위한 수행공간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수행공간은 재가불자들에게도 개방되었고, 어느 지역, 어느 시대에는 출가수행자 보다는 재가불자들에게 더욱 공간을 할애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불교는 출가수행자와 재가불자가 함께 공유하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다. 앞으로 개선해야할 여지가 너무나 많다고 하겠다.


지금의 한국불교는 출가 수행자들을 위한 불교인지 재가불자들을 위한 불교인지 도대체 정리가 안 된 상황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뭔가 제도적으로 개혁하고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고 본다. 말하자면 지금의 사찰문화는 역사나 전통으로 봐서는 의미가 깊고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지만, 시대에 맞고 현대 불교인들의 의식에 적응하는 불교를 하기 위해서는 개선해야할 점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되지만, 문화나 관습이란 쉽게 변화하고 급속하게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입산할 때만 해도 절에서 맞는 설이나 추석은 옛날 기분이 났지만, 지금은 그때에 비교하면 많은 변화가 초래되었다. 절에서는 정초 불공의식이 주를 이루었고, 제사가 많았지만 지금은 불공은 점점 줄어들고 제사는 오히려 더 많아진 느낌이다. 또 그때는 법당에 모두 모여서 큰 스님 법문 듣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지만, 근래에는 이마저도 없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다. 그래서 표충사에서는 제사를 지내면서 간단하게 법문을 해서 법회를 대신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불공시식에만 치중하다보면 자칫 기복신앙 위주로 흐르게 되고, 신도님들은 불교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망각하는 우를 범할 수 있어서 기회 닿는 대로 간단하나마 법문을 들려주려고 노력한다.    


한국의 설날은 역사적으로 더듬어 올라가면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 시절 설날을 쇠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도입되면서 1896년부터 공식적인 새해 첫날의 기능은 양력설에 내주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조선 문화 말살 정책을 편 일제(日帝)는 조선의 음력설을 없애기 위해 조선인들이 음력설에 세배를 다니거나 설빔을 차려입은 경우에는 먹물을 뿌려 옷을 얼룩지게 하고 떡 방앗간을 돌리지 못하게 경찰을 동원해 감시하는 등 온갖 탄압과 박해를 가하였으나, 음력설을 쇠는 풍습을 없애지는 못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40여 년 간 음력설은 명절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여전히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을 유지했기 때문에 음력설도 공휴일로 지정하여 이러한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정부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 1월 1일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6월 항쟁 이후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민족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받아들여 1989년에 음력설을 '설날'로 하고, 섣달그믐(음력 12월 말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 3일 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려서 마을에서 보던 설 명절 분위기는 많이 사라지고 없다. 도시화 산업화의 영향으로 설 명절은 휴가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절 문화도 이에 맞춰서 점점 변하해 가고 있다. 올해는 ‘대통령탄핵’이라는 국가적 불행이 겹쳐서인지 즐겁고 흥겨워야할 설 명절이 어딘지 우울해 보이고 모두들 기분이 홀가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절간에서도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난관을 극복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표충사는 호국대찰이다. 사명성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고, 서산대사와 기허대사의 영정 또한 함께 봉안하고 있다. 표충사는 호국사찰의 상징이다. 호국불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존재하는 불교이다. 종교이전에 국가가 먼저라는 관념이다. 한국불교는 역사적으로 항상 국가를 생각하는 종교로서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재약산인: 도원 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