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 일주문에 담긴 뜻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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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에 담긴 뜻 



 




사진1: 재약산 표충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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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찰의 가람배치는 매우 특이하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나 인도의 원형불교가 전파된 스리랑카나 동남아시아에 가보면 사원구조나 배치가 우리와는 다르다. 한국 사찰은 중국과도 다르다. 대개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사찰이고 가보면 일주문(一柱門)이 있는데, 절에 들어가는 어귀에 우뚝 서 있다. 일주문은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워서 지어진 것이 다른 건물과 다르다. 이 문을 경계로 하여 문 밖을 속계(俗界)라 하고, 문 안은 진계(眞界)인 것이다. 이 문을 들어 설 때 오직 일심(一心)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갖도록 마음을 촉진시키는 데 그 뜻이 있다. 현상 면에서 나타난 것은 삼라만상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하나가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인 본질 면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이 둘이 아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반야(般若)와 번뇌(煩惱)가 둘이 아니다.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도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다.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뜻으로 일주문이 새워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찰에서는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표현한다.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란 구절도 있는데, 사찰에 들어오면 세속적 알음알이로 절문안에 들어와서 토를 달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일차적으로는 속계와 진계로 나뉘지만, 크게 보면 차별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절간에 와서 이런 저런 토를 달면서 아는 척을 한다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다는 이야기이다. 일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근대에 있었던 이야기로 우리에게도 재미있는 스토리이다. 일본의 한 유명한 학자가 유럽에 가서 많이 배우고 돌아와서 당대의 고승을 만나서 아는 척을 하면서 하도 자랑을 늘어놓기에 그저 침묵으로만 일관했다. 그러면서 찻잔에 차만 따라 주었다. 그런데 이 유식한 학자는 눈치도 없이 계속해서 무슨 철학이 어떠니 과학이 어떠니 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고승은 말한 마디 없이 그의 찻잔에 차만 계속해서 따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학자는 큰스님께서도 한 말씀하시라는 투로 채근했다. 하지만 큰 스님은 말없이 차만 따랐는데, 처음엔 홀짝 홀짝 마시다가 그만 배가 불러서 마시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승은 차를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때야 학자는 큰스님께, “스님 찻잔에 차가 넘치고 있습니다. 그만 따르시죠.”라고 했다. 그렇지만, 고승은 차를 계속 따르고 있었다. 이에 그 유식한 학자는 당황해 하면서 “큰스님, 차가 넘치고 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차는 그만 따르시고, 한 말씀 하시죠.”라고 했다. 그때야 고승은 입을 열었다. ‘자네, 찻잔이 왜 넘치는 줄 알면서 내가 차를 따르는 도리를 아는가?“라고 하자, 그 지식인은 ”모릅니다.“라고 즉각 대답했다. 그때 고승은 ”억!“하고 할(喝)을 하면서, ”자네, 이 소리가 몇 근이나 나가겠나?“라고 말하자, 그 지식인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지식인은 유식하기는 했어도 실제로 수행한 바가 없어서 이런 격외도리(格外道理)를 알 리가 만무했다. 고승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사진2: 표충사 정문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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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하도 지식이 많고 유식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해 봐야 그대 마음속에 들어갈 것 같지가 않아서 차를 계속 따랐다고 비유적으로 말씀하셨고, 소리에 무슨 무게가 있으리요, 그렇지만 생사대사를 초탈하는 도의 세계에서는 이런 물음은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에 불과하다고 자비를 베풀었다. 과학이 어떻고 철학이 어떻고 무슨 주의 사상이 여하한지는 모르지만,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꿰뚫은 선(禪)의 세계에서는 본래면목(우주인생의 본질문제=형이상학)을 다루는 고행수도의 길을 가고 있음을 은근히 말씀하셨다. 이에, 학자는 무릎을 꿇고 참회하면서 큰 스님의 도력에 감화되어, 이후부터 참선을 해서 유명한 선학자(禪學者)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일주문 이야기하다 보니, 격외도리까지 언급하게 되었는데 불교는 무엇 하나 간단하게 그냥 넘어가는 것이 없을 정도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에 가면 일주문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 조용히 사색하는 마음을 갖고, 잠시나마 조용히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재약산인; 도원 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