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에 현판을 걸고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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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에 현판을 걸고


 


표충사는 역사상 절의 이름이 몇 차례 바뀌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죽원사(竹園寺)였고, 고려시대에는 영정사(靈井寺)였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표충사로 개칭되었다. 죽원사 또는 죽림사는 인도에서 유래한 절 이름이다. 불교란 종교가 처음 출발할 때 무슨 제도나 확실한 실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유행(遊行)하면서 수행하는 은둔고행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을 쉬라마나라고 불렀다. 요즘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으로 설명한다면, 출가하여 도를 닦는 도인들을 이렇게 불렀다. 부처님께서도 처음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출가수행자가 되었다. 이런 수행자들은 숲 속이나 나무 아래 또는 동굴 같은 데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뭔가 진리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이었다. 고오타마 싯다르타 태자도 부귀영화의 금수저의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중생의 고통이 뭔가 하는 의문을 품고 이런 대열에 뛰어들어서 수도인이 되었고, 결국에는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했던 것이다.   


 


 



사진1: 지난 3월 12일 표충사에서는 재악산 표충사 현판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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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이룬 다음에 제자가 생기고 승가가 형성되면서 뭔가 공동체가 필요하고 규율 또한 필요했다. 하지만 일정한 장소가 없었고, 고정된 멤버들을 위한 공동의 의지처가 필요했는데, 이런 사정을 안 당시 라자그리하(왕사성)의 빔비사라 왕께서 이른바 죽림정사를 증정했다. 일종의 숲속 공원으로 숲과 나무들과 연못 그리고 온천도 있는 아주 자연 환경이 좋은 장소였다. 최초의 불교사원이다. 그래서 불교가 전파되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최초의 절이란 의미에서 대개 죽림사 죽원사 죽림정사 등등의 대나무와 관계된 절 이름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 재악산에서도 죽원사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표충사에서는 죽원사란 이름은 사용하지 않지만, 시민선방에 죽원정사(竹園精舍) 현판을 걸어 놓고 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영정사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는데, 영정이란 샘에서 약수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신령스런 샘이란 의미에서 영정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이름이 한동안 사용되다가 표충사로 변경하게 되었다. 산과 절은 그대로였지만, 시대상황의 역사에 영향을 받게 되어서 사명이 바뀌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표충사로 이름이 굳어졌다. 지금도 이 영정은 표충사 마당에 그대로 존속하고 약수 물이 솟아나서 방문객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있다. 표충사 누각인 우화루(雨花樓)에 가면 고영정(古靈井) 현판이 하나 걸려 있다. 그런데 이 고영정이란 조그마한 현판은 근대의 대강백이신 퇴경 권상로 박사가 쓰신 글씨이다. 퇴경스님은 대강백이면서 동국대 총장을 역임하셨던 분이다. 아마도 언젠가 이곳을 방문하고 이 현판을 쓰신 모양인데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작은 물건이지만, 참으로 가치 있는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진2: 주지 도원 법기 스님이 재악산 표충사 현판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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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는 조선조 임란 때, 사명대사의 호국충혼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춘추로 제향을 모시도록 지정한 사찰이다. 처음엔 사명대사의 고향인 밀양시 무안면에서 가까운 사찰에서 봉행하도록 하였으나, 산세가 웅장하고 기상이 빼어나고 계곡 또한 좋은 이곳 재악산으로 옮겨서 모시도록 했다. 일종의 사당 역할을 한 표충사(表忠祠)를 재악산으로 이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개칭하여 부르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람의 규모가 커지고 전각이 많아지게 되었다. 게다가 춘추제향을 올리고 서산대사와 기허대사의 영정 또한 함께 봉안하여 향사를 모시고, 불교의전인 종사영반과 유교의례인 석전의식을 집행하게 되어서 유불이 합동으로 향사를 모시는 절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불교가 숭유억불의 탄압을 받던 때에도 이곳 표충사는 예외로서 국가에서 지원을 받았으며, 초고의 승직을 표충사에 부여하여 지금 같으면 종정과 총무원장의 승직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동안 산 이름도 재약산 천황산 등으로 부르고 있으나, 문헌상으로 보면 재악산(載岳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표충사와 밀양시에서는 산 이름을 재악산으로 환원시키기 위하여 국가기관에 청구하고 있다. 하여서 재악산 표충사로 현판을 새로 걸게 되었는데 현판 글씨는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이신 지종 원명 대종사께서 쓰셨다. 실제로 산에 오르다보면 느끼게 되는데, 재악산은 무려 1100M가 넘는 한국에서는 고산에 속하고 산세도 험해서 악(岳)자가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표충사는 호국사찰이면서, 호국성사이신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영정을 모신 호국도량이므로 산의 기상이 넘치고 웅장한 산봉과 힘차게 흐르는 폭포 등에 어울리는 재악산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글: 도원 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