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와 표충사-1 / 물안개가 구름 되어 하늘로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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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가 구름 되어 하늘로


사진1: 재약산 표충사 우화루에서 바라본 산과 계곡, 물안개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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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약산 표충사에 온지 이제 한 열흘 된다. 아침 예불과 좌선을 끝내고 대중들과 아침을 먹고 나면 7시도 채 안 된다. 절에서의 하루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도량석과 범종소리가 조용한 산곡(山谷) 산사의 정적을 깬다. 예불을 모시고 나면 좌선을 한다. 절에서는 대개 아침밥을 6시경에 먹는다. 나는 대중스님들과 티타임을 갖기를 좋아한다. 30대에서 70대까지 세대차가 다양한 스님들이 둘러앉아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대선사 시봉을 할 때부터 이 차담(茶談)은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극락암 식구들은 차를 즐긴다. 


하지만 요즘 젊은 30대 스님들은 커피를 마신다. 세대차요 문화차이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도 매일 아침 조반이 끝나면 커피타임을 갖고 소통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곳에 와서도 자연스럽게 아침을 먹고 나서 티타임과 커피타임을 갖는다. 노장들은 차를, 젊은 세대는 커피를 선호해서 두 메뉴를 동시에 내 놓는다. 어떤 스님은 차나 커피나 가리지 않고 마신다. 차를 마시면서 얼굴을 마주 보면서 잠깐이라도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은 그저 좋아서 하는 일상이지만, 대중들 간에 소통의 의미도 있다. 


요즘 우리 절 문화는 너무 개인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예전에는 큰 방에서 함께 자고 함께 밥 먹고 공부하고 의논도 했다. 절간에서도 시대의 변화를 비켜가기는 어렵다. 이렇게 한 방에서 자고 지내라고 하면 아무도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들 방 하나씩을 줘서 개인 사생활을 보장해줘야 한다. 다만 좌선은 같이 한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간격이 있게 마련이다. 큰 방에서 사형들과 함께 뒹굴면서 자고 먹고 공부하고 좌선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내가 노장이 되어 가고 있다니! 주지랍시고 소임을 맡아보니, 이런저런 업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직원들이 출근하는 9시가 되면 하루가 무겁게 시작된다. 


티타임을 끝내고 우화루(雨花樓)에 올라 계곡을 바라본다.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마치 연기처럼 공중으로 슬금슬금 올라간다. 물안개는 공중으로 올라가서 허공에 흩어졌다가 다시 비가 되어 계곡으로 떨어지는 자연의 순환법칙에 순응하겠지. 이 물안개에 무상(無常)이 있고, 윤회(輪廻)가 있고, 인과(因果)가 있고, 삼세(三世)의 철리(哲理)가 담겨 있다. 아마도 누군가 먼저 이 도량에 살았던 스님은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고 다시 비가 되어 순환하는 도리를 알고 우화루(雨花樓=비 꽃 망루)로 명명하였던 것 같다. 계곡에서 아침 햇살을 받아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재약산 풍경은 한마디로 선경(仙境)의 그림 한 폭이다. 한참동안 쳐다보니 주위 풍광과 내가 하나가 된다. 산이 내(我)가 되고 내가 산이 되어 자연과 나는 하나로 합일되는 기분이다. 자연과 내가 하나만 되어도 무위자연의 경지라고 하겠지만, 선불교에서는 자연과 나의 합일의 경지에 만족하지 말고 진일보해서 이런 주관 객관을 보는 놈이 누군지를 찾으라고 한다. 


남들이 보기엔 고대광실(高臺廣室)에서 맑은 공기에 경치 좋은 누각에서 자연과 벗 삼아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노는 것처럼 느낄지는 모르겠으나, 정작 당사자인 스님들은 이런 가운데 주인공을 찾는 화두(話頭)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노릇이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진리추구의 삶이기에 고단한 삶이요 고행의 길이다. 이곳 우화루를 찾는 세속 사람들은 말한다. 5성급 호텔보다 이곳이 더 좋다고. 맞는 말이다. 5성급 호텔이 뭐가 좋은가. 물론 편리하고 화려하겠지. 하지만 힐링(healing) 하기에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세상천지에 몇 군데나 되겠는가. 이곳 우화루에는 우리나라 사찰 30여 곳에 모셔진 사명대사의 영정을 전시해 놓았다. 이곳을 찾는 분들이 사명대사의 호국활동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모두들 사명대사의 영정 앞에 잠시나마 머리를 숙이고 경건해짐을 볼 때, 이 산승은 이곳에 온 보람을 느끼고 호국성사 사명대사의 나라에 대한 충훈을 선양하는 일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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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약산인: 도원법기(道源法機)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