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중앙유치원 원아들의 문화유산답사기3편(양산신문, 2024.12.18)
페이지 정보
조회 12회 작성일 24-12-22 10:55
본문
중앙 토요 자연탐험대' 프로그램
밀양표충사 편
소만(小滿)이 지났다. 봄이 끝나가는지 햇볕이 쏜살처럼 지상에 꽂힌다. 식물은 찰진 광합성을 하는지 윤기 나게 반질거린다.
생장은 담금질로 이루어지는 것. 나뭇잎에 부딪히는 햇살이 힘차게 반짝인다.
잠들어 있는 풀잎을 깨우고 초여름 싱그러움을 길어 올린다. 무언가를 채우는 계절에 헛헛한 마음이 스치는 건 왜! 일까.
색색의 꽃들도 돌아서면 그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꽃이 지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들뜬 마음으로 세 번째 "중앙토요자연탐험대"를 움직일 차비를 차곡차곡 챙긴다.
표충사의 여름은 어떤 모습일까? 하늘이 맑을까. 숲의 둥지는 푸르름으로 채워지고 있을까.
산사의 경내는 고졸한 여름 풍경을 잘 그려내고 있을까. 궁금함이 널리다 보니 길보다 마음이 앞서간다.
차창 문을 열었다. 풀 내음이 향긋하다. 연정을 품은 꽃내음은 반갑다고 손짓을 한다.
춤추는 새들은 낮게 날아오른다. 논물을 가둔 여름은 들판을 내어주면서 벼포기를 튼실하게 뿌리 내린다.
때 이른 초여름 불볕더위와 사투를 벌이는 밭작물들은 여름 깊숙한 곳에다 고개를 숙인다.
마치 그렇게 살아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아름다운 아침이고 풍성한 계절이다,
기분이 좋다. 표충사로 가는 길은 늘 그랬다. 봄이면 봄맛이 상큼했다.
울창한 숲이 보일 때는 찬란한 둥지 속에서 종알거리는 그 무엇의 어린 생명이 어른거렸다.
가을이면 울긋불긋 주황색 수를 놓은 단풍이 황홀했다.
딸과 함께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을 따라 차를 몰다가 스친 등 굽은 나무들은 우직했다.
목적지는 다시 돌아올 정거장이라 서두르지 않았다. 운전대가 편안해지고 문득,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마음을 빼앗긴 밀양 단장면의 단풍 옷들이 수놓는 향연은 가히 일품이었다.
아들의 취업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까치발로 걸어간 거실은 마음졸인 모정의 간절함이 있었다.
겨울안개가 피어 올린 밀양댐과 청아한 얼음골은 순백이 길손의 심중에 깊게 파고들었다.
오늘 답사지인 표충사는 남편과 틈새의 휴일에 종종 들리곤 했다. 수시로 바람을 쐬러 오던 곳이라 친숙한 곳인 셈이다.
그때를 생각하며 옅은 웃음을 짓다 보니 영문을 눈치챈 딸도 방긋하게 따라 웃는다.
먼길을 왔다고 표충사가 반긴다. 짙은 초록의 솔숲에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인다.
조용하던 숲이 환하게 열리고 생기가 돈다. 덤불 사이로 빨갛게 익은 지천의 산딸기가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탐스럽게 달린 열매를 지키는 뾰족한 가시도 콧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등 살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입속에 한입 넣는 아이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호불호가 분명하다 보니 각자의 성품이 언뜻 엿보인다.
인스탄트 식품에 길들어진 아이들에게 있어 산딸기는 더는 침샘을 삼키는 과일이 아니다.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외면당하다 보니 부모세대는 그 깊은 맛을 설명할 방도가 쉽지 않다.
이 또한 아이들에게 있어 문화적 결핍의 전조가 아닌지, 무겁다.
산딸기는 아릿한 추억을 떠올린다. 세상사가 고단할 때는 더 가까이서 만난다.
아버지 당신의 흔적이다. 당신도 내가 보고 싶어 수도 없이 눈물을 훔쳤으리라.
모내기가 끝나고 이맘때쯤 밭에 일하러 가셨던 아버지가 집으로 오실 때
두 손 가득히 따서 우리 이쁜 딸 먹으라고 주셨던 그 산딸기가 얼마나 달콤한지 오랜 기억 속에 맴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배고픈 시절이었다. 당신도 먹고 싶으셨을 텐데,
꽃송이 자식 주려고 곱게 바구니에 들고 오신 그 산딸기를 나는 차마 잊지 못하겠다.
그리움은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다고 한다.
당신의 어린 자식이 좀체 건너지 않을 것 같은 세월을 받아먹다 보니 어느새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 당신이 논밭에서 일군 땀의 정직으로 삶의 가훈이 되었고 소진된 몸은 삶의 위대한 훈장이 되었다.
자식이 보고 싶을 때마다 그리움이 절절하게 배인 울음보를 마음속에다 터트렸을 아버지.
꽃 다 졌다고 쓸쓸해지는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객지에 나간 네가 보고 싶어 울었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당신의 사랑을.
이제는 내 자식을 키워보다 보니 실감이 난다. 그래서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하는 것일까.
키 큰 나무가 무성한 숲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산중이라고 여름맞이 더운 열기는 계곡에 살포시 앉는다. 소나무가 남긴 흔적을 찾아본다.
솔방울과 나뭇가지와 솔잎을 찾아 다시 소나무에게 돌려주는 놀이에
동심을 배부르게 먹은 어른들이 더 신이 났다.
소나무에 얽힌 솔방울 삼대에 걸친 이야기를 듣고 엄마 나무도 찾아본다.
엄마 나무에 높이 올라 매달려 보고 안아주고 속삭이면서 교감을 나눈다.
다양한 나무의 밑둥치를 밀어 올리고 씨앗과 열매를 매단 뿌리를 찾아보는
체험을 통해 생태계가 군집을 이룬 다양성을 알아보았다. 다시금 우리 가족의 소중함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밀양 나들이로 5행시를 지어보며 1학기 "중앙토요자연 탐험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하루의 석별을 나누는 정도 아쉽기만 하다. 잘 놀았고 음미했고 싹싹하게 손을 흔들었다.